쉬지 않고 생각하는 뇌, 잠들지 못한 일상
가만히 있는 시간조차 불편했던 적이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앉아 있으면, 뭔가 해야 할 일을 놓치고 있다는 불안감이 밀려왔고, 조용한 틈이 생기면 본능처럼 스마트폰을 켜서 무엇이든 읽고, 듣고, 봤다.
뉴스, 메일, 카톡, 유튜브, 업무 채팅, 쇼핑 앱, 심지어 날씨 예보까지.
나는 늘 정보를 흡수하고, 반응하고, 생각하며 쉬지 않고 살아가는 뇌를 갖고 있었다.
문제는 그게 당연한 상태라고 믿었다는 것이다.
바쁘고, 멀티태스킹이 능력이고, 늘 ‘열일’하는 뇌가 있어야 유능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 날, 아침부터 어지럽고 가슴이 답답해지는 느낌을 받았고, 그게 단순한 피곤함이 아니라 ‘머리가 멈추지 못한 피로’라는 걸 깨닫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우리는 생각보다 훨씬 많은 정보를 받아들이고 있다.
하루 동안 내가 본 콘텐츠는 수백 개가 넘고, 머릿속에는 동시에 수많은 ‘해야 할 일’과 ‘잊으면 안 되는 일’이 떠다닌다. 하지만 정작 어떤 정보가 나에게 진짜 필요한지, 어떤 감정이 지금 내 안에서 자라고 있는지는 돌아볼 시간이 없다.
나는 내 감정이나 상태보다 더 자주, 기계 알림을 먼저 인식하며 살고 있었다.
가끔 내가 진짜 무언가를 ‘원해서’ 하는 건지, 단지 계속 연결되어 있지 않으면 불안해서 ‘습관적으로’ 하는 건지 헷갈릴 때가 많다. 그런 날은 어김없이 하루가 피곤하고 무기력하게 끝난다. 내 뇌는 마치 과부하가 걸린 컴퓨터처럼, 멀쩡해 보이지만 내부에선 과열이 일어나고 있었던 거다.
나는 오랫동안 그 신호를 무시해왔다. 그리고 이제서야, 내 뇌에게 “괜찮냐”고 묻게 된다.
멀티태스킹이라는 거짓말, 그리고 집중력의 붕괴
예전에는 ‘멀티태스킹’이 멋진 능력처럼 느껴졌다.
한 손엔 커피, 다른 한 손엔 스마트폰을 들고 업무 메일을 확인하면서 귀에선 팟캐스트를 듣고, 잠시 후엔 회의에 들어가고, 또 동시에 머릿속에선 저녁 메뉴를 고민하는 그런 삶.
바쁘게 살수록 유능한 것 같았고, 여러 가지를 동시에 처리하면 효율적이라 믿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건 집중력을 파편화시키는 착각의 기술에 불과했다.
나는 여러 일을 동시에 하고 있는 게 아니라, 그저 ‘짧게 집중 → 빠르게 전환’을 반복하고 있었고, 이 과정에서 뇌는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었다.
실제로 뇌는 진정한 의미의 멀티태스킹을 할 수 없다.
우리가 ‘멀티’라고 느끼는 순간에도, 뇌는 초당 단위로 포커스를 옮겨가며 스위칭을 반복하고 있다.
그리고 이 ‘전환’은 생각보다 뇌에 부담이 크다.
집중의 깊이는 얕아지고, 기억력은 흐려지며, 감정은 더 예민해진다.
내가 최근 몇 주 동안 아무리 일을 해도 '한 일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던 이유'는, 아마 바로 이것 때문일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그 멀티태스킹 속에서 ‘나’가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왜 하고 있는지보다는
얼마나 빨리 처리했는지,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는지에만 몰두했다.
결국 일이 끝나면 남는 건 성취감이 아니라 피로감뿐이었다.
그래서 요즘 나는 일부러 느린 집중을 연습한다.
한 번에 한 가지 일에만 몰입해보기.
간단해 보이지만 쉽지 않은 이 연습은 내 뇌가 숨을 쉬게 하는 법을 가르쳐주고 있다.
마치 늘 조급했던 숨이 길어지는 것처럼,
하나에 집중하는 시간은 생각보다 훨씬 더 큰 에너지를 내게 돌려준다.
‘덜 아는 삶’이 오히려 더 편안했다
멀티태스킹과 정보 과잉 속에 살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덜 아는 것’에 대한 불안이 생긴다.
오늘 핫한 이슈를 놓치면 안 될 것 같고, 친구의 소식을 못 보면 소외되는 기분이 들고, 내가 지금 이 시점에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뒤처질 것만 같다.
하지만 한 달간 ‘정보 미니멀리즘’을 시도해보며 깨달은 건,
덜 아는 삶이 훨씬 더 평온하고, 선명하고, 따뜻했다는 것이다.
뉴스는 하루에 한 번만 요약본으로 확인했고, SNS는 알림을 꺼두었고,
유튜브도 자동 재생을 막고 원하는 콘텐츠만 30분 이내로 제한했다.
그 결과, 나는 더 많은 시간을 내 감정과 관계, 실제 생활에 쓸 수 있게 되었다.
친구와의 대화도 깊어졌고, 책을 읽는 시간도 늘었고,
무엇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에 불안을 느끼지 않게 되었다.
놀라운 건, 그렇게 정보에서 거리를 뒀다고 해서
정말 ‘뒤처지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삶이 내 페이스로 돌아오는 느낌이었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연결되고, 빠르게 반응할수록 내가 더 똑똑해지고 있다는 착각 속에 살았지만,
사실은 점점 더 피로해지고, 나와 점점 멀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도 나는 완전히 정보 과잉에서 벗어나진 못했다.
하지만 적어도 ‘필요하지 않은 것을 껴안고 있지 않겠다’는 기준은 세웠다.
내 뇌는 이제 조금씩 회복 중이다.
그리고 그 회복은 단지 정보량을 줄이는 게 아니라,
나의 주의력과 감정을 되찾는 과정이었다.
결국 중요한 건 ‘얼마나 알고 있는가’가 아니라,
‘내가 진짜 집중하고 싶은 것에 얼마만큼 에너지를 쓰고 있는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