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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세상에서 멀어질수록 나와 가까워지는 기분

by yjjuuuuu 2025. 9. 25.

매일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어딘가 끊겨 있는 나


나는 매일 스마트폰과 함께 하루를 시작한다. 알람이 울리면 반사적으로 화면을 켜고, 몇 시간 전 도착한 메시지를 확인하거나, 어제 올린 게시물에 누가 좋아요를 눌렀는지 확인한다. 출근길 지하철에서도, 점심시간에도, 심지어 잠들기 전까지도 나는 누군가의 소식 속에 있고, 나의 일상도 그들 속 어딘가에 떠다닌다. 그렇게 늘 ‘연결되어 있는 상태’가 나의 일상이 되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은 자꾸만 허전하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과 소식을 주고받고, 내가 뭘 했는지도 다 보여주고 있는데… 왜 더 외롭고 공허할까? 처음엔 그냥 피곤해서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날, SNS를 끄고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던 그 짧은 순간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금 누구와 연결되어 있고, 누구와 단절되어 있는 걸까?”
사실 나는, 나 자신과 단절되어 있었던 것이다. 스마트폰 속 세상에는 누군가의 행복, 성공, 인기, 멋짐이 넘쳐나고, 그걸 보고 있는 나는 늘 상대적으로 작아지고 불완전한 느낌을 받는다. 자극적인 정보와 짧은 영상, 끝없이 이어지는 피드는 잠시 즐거움을 주지만, 금세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고 만다. 그리고 그 속에서 나는 점점 내가 누구인지, 어떤 삶을 원하는지조차 흐려지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어느 날부터 조금씩 거리를 두기로 했다. 굳이 SNS에 올리지 않아도 되는 날은 폰을 꺼두고, 산책을 하거나 일기를 썼다. 처음엔 낯설고 심심했지만, 그 '심심함' 속에서 잊고 있던 내 감정이 하나둘 떠오르기 시작했다. 기쁘거나 슬펐던 일, 아무도 몰랐던 내 고민, 오랜만에 떠오른 옛 추억까지. 그렇게 조금씩, 나는 디지털 세상과 멀어지며, 나 자신에게 다시 말을 걸고 있었다.

 

‘정보’ 대신 ‘감정’을 선택할 때 비로소 들리는 마음의 소리


요즘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다. 누가 어디서 무엇을 먹었는지, 누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어떤 게 유행이고, 어떤 콘텐츠가 ‘핫’한지. 화면을 켜기만 하면 전 세계 사람들의 하루가 쏟아져 들어온다. 그런데 정작, 나 자신에 대해서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내가 오늘 진짜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지금 무엇이 나를 지치게 만드는지, 무엇을 하면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지는지—이런 것들에는 참 무심했던 것 같다.
한동안 SNS나 뉴스, 유튜브 소비를 줄이고, 단순한 일상에 집중해보기로 했다. 휴대폰은 침실에서 없앴고, 식사할 땐 폰 대신 음악을 틀거나 그냥 조용히 먹었다. 그리고 하루에 10분씩 감정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특별한 일이 없어도, '오늘 어떤 감정이 제일 컸는지' 한 줄씩 적었다. 처음엔 막막하고 어색했지만, 어느 날부터는 감정이 단어로 구체화되는 기분이 들었다.
놀라운 건, 그렇게 조금씩 감정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하자 마음이 전보다 훨씬 평온해졌다는 것이다. 예전엔 뭔가 답답하거나 불안하면 무조건 스마트폰부터 꺼냈다. 자극적인 영상이나 콘텐츠로 감정을 덮어버리는 식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불편한 감정이 생겨도, 그것을 그냥 느끼고 흘려보낼 수 있게 되었다. 감정은 무시한다고 사라지는 게 아니라, 알아봐 줄 때 비로소 사라진다는 걸 몸으로 느낀 것이다.
디지털 세상은 빠르고 화려하고 유혹이 넘친다. 반면, 내 감정은 느리고 평범하고 때로는 무겁다. 그래서 자꾸만 외면하고 싶어졌던 것 같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건 그 느린 감정 속에 숨어 있었다. 디지털 세상에서 한 발짝 물러서면, 그제야 들리는 마음의 소리들이 있다. 그리고 그 소리야말로, 나다운 삶을 살아가게 해주는 지도처럼 느껴졌다.

 

느림과 비움 속에서 나를 다시 만나다


디지털 세상에서 벗어나면 가장 먼저 느끼는 건 ‘시간이 느려진다’는 것이다. 하루가 길어지고, 분 단위로 쪼개 쓰던 시간이 한숨 돌리듯 흘러간다. 그동안 얼마나 시간을 ‘죽이기’ 위해 스마트폰을 들여다봤는지 새삼 실감하게 된다.
그 느려진 시간 안에는, 그동안 미뤄왔던 감정도, 생각도, 잊힌 나 자신도 함께 있었다.
어느 날 오후, 스마트폰을 집에 두고 동네를 한 바퀴 산책한 적이 있다. 특별한 목적도 없었고, 음악도 없었다. 그냥 발 닿는 대로 걸었고, 가을 햇살과 바람, 고양이 한 마리, 나뭇잎 부딪히는 소리를 들었다. 예전 같았으면 사진으로 찍고 스토리에 올렸겠지만, 그날은 그냥 그 순간 자체를 느끼는 것으로 충분했다.
화면으로 저장하지 않아도, 마음에 남는 기억이 있다는 걸 처음으로 실감한 순간이었다.
디지털 세상은 분명 편리하고, 때론 영감을 주고, 새로운 기회를 만들기도 한다. 나는 그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세상이 전부가 되면, 우리는 ‘내 삶의 주인’이 아니라, 알고리즘이 정해준 흐름 속을 떠다니는 부유물처럼 살게 된다.
‘나를 위한 시간’을 갖기 위해선 의도적인 거리두기가 필요하다.
그건 세상을 등지는 게 아니라, 내 안의 세계를 복원하는 시간이다.
요즘 나는 하루에 한 번,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만든다. 폰 없이, 음악 없이, 화면 없이. 처음엔 심심하고 불안했지만, 지금은 그 시간이 하루 중 가장 나를 회복시키는 시간이다. 디지털로 꽉 찬 삶 속에서 ‘비움’은 사치가 아니라 필수였다.
나는 여전히 디지털 세상을 살아간다. 하지만 이제는 가끔, 그 세상에서 물러나 진짜 나를 마주하는 시간을 스스로 허락하고 있다. 그리고 그 시간들 덕분에 나는, 조금 더 나를 이해하고, 조금 더 나를 아끼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디지털 세상에서 멀어질수록 나와 가까워지는 기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