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전, 나는 왜 인스타그램을 지웠을까?
사실 나는 꽤 오랫동안 인스타그램을 ‘별생각 없이’ 사용하고 있었다. 지하철을 타면 습관처럼 피드를 스크롤했고, 커피 한 잔을 마셔도 사진부터 찍었다. 여행지에서는 "좋아요" 많이 받을 만한 구도를 먼저 고민했고, 누군가의 멋진 일상이나 몸매, 커리어를 보며 나도 모르게 비교했다. 웃긴 건, 인스타그램을 보고 나면 늘 마음 한 켠이 허전하고, 어딘가 찌질해지는 느낌이 들었다는 점이다. 재미로 시작했던 SNS가 어느 순간부터는 피로의 원인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도 쉽게 끊어내지 못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심심할 때 볼 게 없으면 불안했고, 친구들이 뭘 하고 있는지 모르면 소외당하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내 일상을 '기록'하지 않으면 그 하루가 의미 없어 보이기도 했다. 사진을 찍고, 필터를 씌우고, 태그를 달아 올리는 그 일련의 행위가 내 존재감을 증명해주는 것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하지만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진짜 내 삶을 살고 있는 걸까? 아니면 보여주기 위해 사는 걸까?” 이 질문이 자꾸 머릿속을 맴돌았고, 마침내 나는 앱을 삭제했다. 단순한 로그아웃이 아니라, 정말로 앱을 지워버렸다. 목표는 단순했다. 인스타그램 없이 딱 한 달, 살아보기.
처음엔 별일 아닐 줄 알았지만, 내 일상 곳곳에는 인스타그램이 너무나 깊게 침투해 있었다. 이제부터의 이야기는, 그 앱 하나가 사라진 자리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에 대한 기록이다.
인스타그램 없는 일상: 불안함, 해방감, 그리고 진짜 나
앱을 지운 첫 며칠은 이상할 정도로 허전했다. 손은 습관처럼 화면을 켜고, 인스타그램 아이콘이 있던 자리를 누르려 했다가 멈췄다. 없는 걸 알면서도 자꾸 누르게 되는 그 무의식적인 동작이 내 중독 상태를 여실히 보여주는 듯했다. 화면에 떠 있는 다른 앱들—뉴스, 유튜브, 카메라, 날씨—어느 것도 그 허전함을 채워주지 못했다.
하지만 재미있는 건, 시간이 지날수록 그 허전함이 ‘여유’로 바뀌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평소엔 무의식적으로 인스타그램을 보며 소비했던 10분, 20분의 시간이 서서히 내게로 돌아왔다. 그 시간 동안 나는 책을 몇 페이지 더 읽을 수 있었고, 차를 천천히 마시거나, 음악을 들으며 그냥 멍하니 있을 수 있었다. 이 단순한 시간들이 그렇게 충만하게 느껴질 줄은 몰랐다.
그리고 ‘사진 찍기’에 대한 생각도 바뀌었다. 예전에는 예쁜 장소나 예쁜 음식이 나오면 무조건 인스타에 올릴 생각부터 했다. ‘좋아요’ 수, 댓글 반응, 스토리 뷰 수 같은 것들이 내 즐거움을 결정짓는 기준이 되곤 했다. 하지만 이제는 순간을 그냥 온전히 느끼는 쪽으로 내 시선이 달라졌다. 사진을 찍어도 ‘기록용’일 뿐 ‘전시용’이 아니었다. 그 작은 차이가 내 마음을 훨씬 가볍게 만들었다.
또 한 가지 놀라운 건, 인스타그램 없이도 인간관계는 전혀 문제 없었다는 사실이다. 누가 뭘 먹었는지, 어디 놀러 갔는지 몰라도 별일 없었다. 오히려 가까운 사람과 직접 대화하거나, 전화를 통해 안부를 나누는 횟수가 늘었다. 디지털 소통이 줄어든 자리에 아날로그 감성이 되살아난 셈이다.
한 달 후: ‘좋아요’ 없이도 나는 충분하다
한 달이 지나고, 나는 다시 인스타그램을 설치할까 말까 고민했다. 솔직히 말하면 그리웠다. 친구들이 올린 사진도 보고 싶었고, 나도 오랜만에 무언가 올려보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다시 앱스토어에 들어갔다가, 설치 버튼을 누르지 못하고 그냥 나와버렸다. 이유는 단순했다. 그 한 달 동안의 평온함이 너무나 값졌기 때문이다.
인스타그램을 지운다고 해서 인생이 갑자기 바뀌진 않았다. 하지만 놀랍게도, 마음의 구조는 바뀌었다. 비교하지 않고, 보여주기 위해 살지 않고, 나의 감정과 일상에 더 집중하는 법을 배웠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SNS 피로’라는 게 단지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아니라, 내가 삶을 사는 방식 자체를 왜곡시키고 있었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된 것이다.
지금은 인스타그램을 아예 안 하겠다는 극단적인 생각은 하지 않는다. 필요할 땐 잠깐 접속할 수도 있고, 기록을 위해 사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확실한 건, 예전처럼 집착하거나, 그것을 기준으로 내 가치를 판단하는 일은 없을 거라는 점이다.
내 일상의 가치, 내 감정의 진실성, 나의 행복은 더 이상 ‘좋아요’ 수로 증명되지 않는다.
이 작은 실험은 나에게 큰 확신을 주었다.
나는 SNS 없이도 충분히 괜찮은 사람이라는 것.
그리고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 한 달은 충분히 의미 있었다.